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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쓸면서

시골 목사의 주일 시간은 이만저만 분주하고 각박한 게 아닙니다.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들꽃을 꺾어 강대상에 올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주일학교 차량 운행과 예배, 그리고 대예배 차량운행과 예배, 공동식사와 학생회를 위한 차량운행과 예배, 다시 주일학교 오후 프로그램을 마치기까지 열두 시간 내외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하지만 제일 먼저 주일 아침에 해야 할 일은 마당에 있는 두 그루의 호두나무에서 쏟아진, 때 이른 낙엽을 쓸어내는 일입니다. 아직 삼복(三伏) 중인데도 올해는 기나긴 가뭄과 폭염 때문에 젊고 싱싱한 초록 이파리들이 요절(夭折)하여 마당에 처연히 널브러져 있습니다.

낙엽을 쓸기 위해 비질을 시작하려니 호두나무 어두운 그늘 아래 상사화 한 무더기가 밝게 피어있는 게 보입니다. 제 한 생명을 불태워 습하고 어두운 구석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꽃을 보며 죽음과 삶, 우주와 운명 같은 생뚱맞은 생각을 합니다. 아직도 건강하고 싱싱한 호두나무 가지들과 요절한 이파리들, 그리고 저 고요하게 밝은 상사화가 대비를 이루며 좁은 마당을 넓혀놓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죽음 앞에선 누구든지 절박합니다. 그래서 세간에 이런 통속적인 격언이 나돌기도 합니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시간을 헛되이 소비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교훈을 담은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비극적인 자기 인식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유한합니다. 언젠가는 죽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존재의 밀도를 높이고 생명의 질감을 풍성하게 합니다. 또 죽음은 존재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킵니다. 삶과 죽음의 간극은 우주 공간만큼 의식의 공간을 넓혀놓습니다.

죽음을 마주보기 때문에 삶은 더 풍요롭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삶을 확장시키는 존재의 키워드입니다. 죽음과 삶이 마주보는 공간에 창이 열리고, 그곳에 달과 별이 뜹니다. 그 창문에 기대어 우리는 별과 별 사이의 심연을 바라보며 영원을 그리워합니다. 그곳에서 절대자에 대한 깨달음과 의존의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할머니 한 분이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죽게 되거들랑 중환자실에 있게 하지 말고, 목사님이 우리 애들 잘 구슬려서 집으로 데려와 달라”고. 인공조명이 비치는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산소호흡기와 수많은 주사바늘에 매달려 고통스럽게 연명되지 않고 싶다는 뜻이지요. 



창문을 열고 우주의 시간을 바라보며, 그 깊고 심원한 하나님의 시간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고 싶은 겁니다. 이파리 하나 뚝 떨구듯이 육신을 가볍게 내려놓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가겠다는 뜻입니다. 이 마당에 떨어진 하나의 이파리처럼.

<김선주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


원문출처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677542&code=61221111&sid1=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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